2015. 3. 5. 17:57
고대에는 철학과 과학의 명확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과학 자체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생겨난 학문이라면, 철학 또한 세상의 기원을 생각해보는 철학의 종류가 존재하고, 고대에는 이러한 자연에 대해 생각하는 학문들을 ‘자연 철학’이라고 불렀다. 서양과 동양에서 자연계의 기본 구성을 보는 자연 철학적 관점으로는, 서양에는 ‘원자설(입자설)’과 ‘4원소설’ 등이 있었고 동양에는 ‘음양오행’ 이 있었다.
원자설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인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BC 460?-370?)가 독자적으로 생각한 가설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 제창한 것이 아닌 그의 스승 철학자인 루시푸스(Leucippus, BC. 341-270)가 먼저 제안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대중적으로는 데모크리토스의 가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2500여 년 전에, 모든 물질은 원자(atom)라고 부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입자로써 구성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atomo라는 말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다.’ 라는 그리스어이고 이에서 현재의 atom이 유래되었다. 데모크리토스는 그리스 초기의 가장 위대한 자연 철학자이고, 현재의 물리학의 창시자라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자연계를 보는 관점에 원자를 도입하였고, 그를 바탕으로 원자설을 제창하였고, 이렇게 말하였다. ‘원자는 더 쪼갤 수 없는 작은 입자이며, 원자는 항상 운동하고 있고, 그 운동 때문에 다른 원자와 충돌한다. 또한 원자는 모양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성질도 제각각이다.’ 라고 설명했다. 또한, 원자가 존재하지 않는 곳은 ‘공허(kenon)’라고 칭했으며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현재의 ‘진공’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1
하지만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le, 384-322)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모든 물질은 화, 풍, 토, 수의 4원소로 이루어져 있고, 우주 공간은 에테르라는 물질이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에테르 개념까지 포함하여 ‘5원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권위 있는 철학자였기 때문에 한동안은 4원소설이 정설인 것 마냥 믿어져왔다. 그러나 이후에는 화학 지식인들의 출현으로 인해 4원소설이 사라지고, 영국의 돌턴(John Dalton, 1766-1844)이 근대 원자론을 제시함으로써 다시 원자론이 부활하게 된다. 새로 부활하게 된 근대의 원자론은 고대의 원자론의 결함을 어느 정도 제거한, 철학이 아닌 ‘과학’의 분야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4원소설은 데모크리토스의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강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원자설의 발전을 저해시킨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동양에서 생각한 자연계의 기초는 음양오행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모든 물질을 구성하고 생성, 변화를 이루어내는 음양의 두 기운과, 화, 풍, 토, 수, 금의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음양의 두 기운과, 화, 풍, 토, 수, 금의 다섯 가지 요소는 중국 고대에 각각 독립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되다가 전국시대에 이르러 서로 결합되어 한 개념으로 성립되게 되었다. 이 이론은 앞서 언급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이 출현한 시대와 상당히 가까운 시대에 조금 더 이르게 등장하였다. 그러나 그 시기의 동양에서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자(BC 551-479)와 맹자(BC 372?-289?)에 의해 다듬어진 음양오행설이 널리 퍼져 우주를 기술하는 진리처럼 여겨져 왔기에 서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에 밀린 원자설은 동양에서는 더더욱 환영받지 못하였다.
음양오행은 앞서 언급한 원자론처럼 ‘자연계의 구성 요소’ 부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주 전체적인 부분에 걸쳐서 다방면의 학문에서 사용 가능한 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자설보다 더 범위가 넓고 과학 이외의 부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면 도교의 수련이나, 병법, 예술, 중국 의학 등의 분야까지도 확대되어 있는 사상이다. 음양오행은 우주의 모든 변화 법칙의 궁극이 ‘음양’의 변화라고 칭하였고, 이 우주 안의 모든 변화의 법칙을 가르켜 ‘도(道)’ 라고 칭한다. 이러한 우주의 변화 법칙을 밝혀 놓은 책으로 ‘주역’ 이 있고, 공자는 주역 계사전에 그 변화 법칙을 ‘일음일야지위도’ 라고 밝혔다. 이것은 한 번 음하게 되고, 한 번 양하게 되는 것을 도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음양의 변화 법칙이 바로 이 우주의 변화 법칙이라는 것을 말한다.
음양오행 중, 오행의 개념은 우주 만물을 구성하고 생성변화를 이루어낸다는 의미도 있지만, 인간 삶에 필요한 다섯 가지 원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몇 가지의 원소가 모든 물질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음양오행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과 상당히 흡사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국 시대의 추연에 의해 음양과 오행의 두 개념이 결합되며 음양오행은 4원소설과는 다른 동양의 독자적인 이론으로 성장했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 고대에는 전체적인 부문에서 서양을 앞질렀다고는 하나, 과학에서만은 예외였다. 다만 천문학에 대해서만큼은 동양이 서양에 비하여 우수한 편이었다. 중국의 장형(78-139)이라는 과학자 겸 문인은 천구의인 혼천의를 비롯하여 지진계라 할 수 있는 후풍지동의를 만들었다. 반면에 서양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과 당시 서양을 휩쓸고 있었던 가톨릭 종파에 의하여 ‘천동설(지구 중심설)’을 믿었으며 올바른 천문학을 연구하고자 하면 종교계에서 강한 처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대 이전에 발달한 천문학 지식들은 ‘천문학’의 측면보다는 ‘점성술’의 면모가 강했다. 그래서 서양에서의 제대로 된 천문학의 발전은 갈릴레이 시대 이후로부터 등장하게 된다.2 반면 동양은 한국의 장영실이 중국의 그것보다 우수한 혼천의를 만들게 되고, 왕실에서는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도록 과학자들을 부렸기에 서양보다 더욱 큰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 가톨릭의 몰락 이후로는 다시 서양 측의 우세로 향한다.
앞서 말한 원자론을 말한 데모크리토스 이후에는 고대 그리스의 물리학자 겸 수학자인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212)가 등장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이 그렇게 수명이 길지 못했기에 아르키메데스는 실질적인 현재의 물리학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의 원리를 발견하고 왕 앞에서 ‘긴 지렛대와 지렛목만 있으면 지구도 움직여 보이겠다.’라고 말한 바도 있고, 부력에 관한 큰 원리인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알아내어 유레카를 외쳤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대의 동양의 과학적 업적은 물론이며 동양에서는 기원전의 과학의 발전에 관한 과학사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또한 고대 서양에서는 연금술이 굉장히 성행하였다. 연금술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아라비아를 거쳐 중세 유럽에까지 전해진 원시적인 화학 기술이다. 구리, 납, 주석 따위의 하찮은 금속으로 금, 은 따위의 귀금속을 제조하려고 하던가, 혹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불로장생의 약이나 만병통치약 등을 만드는 것을 추구한 학문이다. 이 연금술이 바로 앞서 말한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4원소설과, 고대 이집트의 야금술이 결합하여 생긴 학문이다. 이를 알 수 있음은 연금술사의 설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모든 근원 물질을 기초로 하고, 이에 여러 가지 속성이 부여됨으로써 만물이 생기며, 따라서 물질을 정제, 정화함으로써 근원 물질로 환원하여 이에 다른 속성을 주어 별개의 물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속성’ 이라는 것이 4원소설에 기초를 두고 있다.
연금술사들은 그 방법의 발견을 위해 노력을 하였다. 연금술이 성행하는 기간 동안에는 서양도 그렇다할 과학적인 발전이 없었다. 게다가 큰 노력을 투자해도 조금의 성과도 나오지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이 깨지기 직전까지 연금술은 성행했다. 그토록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서양의 자연 철학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연금술로써 만병통치약이나 불로장생의 약을 만드는 것, 하찮은 금속을 귀한 금속으로 만드는 것은 천 년 이상 걸린 노력이었지만 이러한 본래의 목적들은 모두 실패하였기에 서양 과학의 발전에 영향이 없다고 치부될 수도 있지만 하찮은 금속들을 귀금속으로 정제하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원소들의 화합물 등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은 서양의 근대 화학을 크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동양은 천문학 외에는 이렇다 할 과학적인 발전은 없었다.3 중국을 중심으로 천문학과 역법 등이 크게 발전해왔지만 물리학이나 화학 분야에서는 거의 없었다. 중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과 유사한 음양오행을 계속 믿고 있었고, 음양오행 자체가 자연 철학 이론이라고만 볼 수 없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존재하며, 자연 철학 분야에서는 더욱 특별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음양오행을 제외하면 딱히 자연 철학에 대한 연구시도가 서양에 비하여 없었던 편이다.
하지만 동양의 과학 또한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되는데, 이는 동, 서양 과학 문명의 교류에 의한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과학의 교류가 있는 시점은 이미 가톨릭은 몰락한 후 개신교가 등장한 시점이다.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의 천문학이 동양에 전파되고, 서양인들은 우주의 구조를 동양인들에게 말했다. 갈릴레오 직후, 티코 브라헤나 케플러 등에 의하여 고대에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태양 중심설)’이 앞서 말한 ‘천동설(지구 중심설)’을 무너뜨리고 정설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동양도 자연 철학 중 천문학은 상당히 발전한 편이었지만 그것은 ‘관측 천문학’ 부분에 상당히 국한된 것으로 보인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별이나 별자리를 통한 역학, 역법 등은 상당히 발전하였지만 우주 단위의 지식은 부족했다. 그러나 서양과의 과학 교류를 통하여 태양계의 구조와 지동설 등을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서양에서는 중세 시기부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이미 상식이었다. 그것은 갈릴레이가 생존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가톨릭이 태양 중심설을 타도하긴 하였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는 월식이 진행될 때 달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가 둥글다는 점이나, 먼 바다에서 뭍으로 다가오는 배의 돛부터 보이는 것, 무엇보다 배를 이용한 세계 일주가 가능했다는 점 등의 수 가지의 증거가 존재했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교리에 부적합한 이론은 아니므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자연 철학 이론이 되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서양과 과학 교류가 있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지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이 동양의 자연 철학이 서양의 자연 철학보다 열등하거나 뒤떨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동양의 자연 철학과 서양의 자연 철학은 둘 다 만물의 원리를 깨우치고자 하는. 분명한 자연 철학이다. 그러나 분명히 동양과 서양의 자연 철학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왔던 것이다. 동양의 자연 철학은 현대에 말하는 ‘과학’과는 조금 달랐다. 자연 철학에 다른 철학적인 사상을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동양은 처음부터 자연 철학을 형이상학적인 표현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 송대의 유학자인 주자 (1130.10.18.~1200)는 주자학을 집대성하였는데, 그는 우주가 형이상학적인 ‘이(理)’와 형이상학적인 ‘기(氣)’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인간에게는 선한 ‘이’가 본성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불순한 ‘기’ 때문에 악하게 되며 ‘격물’로 이 불순함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극히 철학적인 내용이며, 이미 자연 철학보다는 형이상학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음양오행도 형이상학적인 부분이 있으며, 중국은 자연 철학 자체의 발전보다는 형이상학적인 철학 사상의 발전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서양은 형이상학보다는 사실에 근거한 과학적인 자연 철학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과학적 측면의 자연 철학은 서양이 더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자연 철학’의 우세를 논할 수는 없으며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자연 철학이 어떻게 다르게 발전해왔는지가 확실하게 비교가 되는 점이다.
주자는 앞서 말했듯, 두 개의 개념 ‘이’와 ‘기’의 개념을 구분하였다. 이것은 서양의 형이상과 형이하의 개념과도 잘 맞는다. 형이하는 눈에 보이며 인지되는 것을 말하고 형이상은 그렇지 않고 측정 불가능한 것들을 말한다. 사물은 형이하적 개념을 대변하는 단어이고, 마음은 형이상을 대변하는 단어라고 생각했을 때, 형이하를 무시했고, 따라서 ‘이’라는 개념이 ‘기’라는 개념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자는 ‘도기불리(道器不離)’라 하여, ‘기’와 음양오행의 ‘도’는 따로 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란 앞서 말한 기(氣) 가 아니라 도구를 나타내는 기(器)를 칭한다. 도가 기속에 존재하며 기가 없이는 도가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동양인에게는 형이상의 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형이하의 기도 탐구해야 할 대상이었고, 자연스레 전문 과학 기술 지식의 탐구도 중요해 진 것이다.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최초로 학문으로서 확립된 철학이고, ‘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연구하는 학문’ 이라고 칭해진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과학을 형이상학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고 자연 철학의 대상으로 보았으며4, 오히려 동양에서의 과학이 형이상학에 매우 흡사하게 존재해왔던 것이다. 동양의 고대 과학도 자연 철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은 맞지만, 형이상학적인 면모를 강하게 띠고 있다. 형이상학은 영역적, 부분적인 지식이 아니라 보편적, 전체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며 동양의 음양오행 또한 형이상학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하면 왜 동양의 자연 철학이 현대의 과학과는 약간 거리가 멀고 철학적인 측면이 더욱 강한지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에 관한 자연 철학적 사상과 음양오행은 그 내용에서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 상당히 존재하는데 이것이 두 이론이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공통적으로 띠고 있기에 그런 것임을 알 수 있다.
서양과 동양의 고대 자연 철학을 비교해 보았고, 이렇듯 고대 동, 서양의 자연 철학에서는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이 존재하면서도 그 성격에서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서양은 실사에 기초한 자연 철학을 기술해나갔고 동양은 형이상학적인 측면이 강한 자연 철학을 기술해나갔다. 고대의 과학이라는 것은 철학과 명백하게 차이를 둘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서양의 자연 철학이 현대의 과학에 기반한 사실에 가깝고, 동양의 과학이 상당히 철학적이라 과학으로 분류하기 어렵다고 해도 당시에는 동양의 자연 철학도 분명히 과학이었다는 것은 옳다.
또한, 동양의 자연 철학과 서양의 자연 철학은 두 가지 모두 원자론과 음양오행, 즉 만물의 기초의 근원부터 시작하여 발전을 시작하였다. 동양의 경우는 자연 철학에 형이상학이 상당히 많이 녹아들어있고, 그래서 현대에 말하는 ‘과학’ 과는 상당히 다른 자연 철학의 발전이 있었다. 서양의 경우는 현재 과학사의 일부가 되는, 실사에 기초한 과학이었다.
동양의 자연 철학, 특히 음양오행은 현재에는 종교나 신앙 정도로 남아 있지만, 서양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에서부터 시작된 자연 철학은 현재의 과학으로 발전하였고 원자의 존재가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현재는 원자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원자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러한 점들이 서양의 자연 철학이 현재의 과학과 흡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동양의 자연 철학이, 과학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동양과 서양이 추구하는 자연 철학의 방향이 달랐을 뿐이며,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동양의 자연 철학과 서양의 자연 철학을 비교해보며 각각 그들이 어떤 방식의 자연 철학을 발전시켜왔고, 상당히 유사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다른 부분 또한 지니고 있다. 서양의 자연 철학은 오늘날의 과학의 실질적인 기초가 되어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과학’의 의미를 강하게 띠고 있는 반면에 동양의 자연 철학은 현재로썬 ‘과학’의 분야보다는 ‘철학’의 분야에 더 많이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딱히 과학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철학과 과학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던 고대에서의 자연 철학이기에 동양의 자연 철학은 ‘자연 철학’ 이라고는 볼 수 있다. 현대의 관점에서 동양의 음양오행이 과학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 당시에 과학이 아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동양은 관측천문학을 크게 발전시켰고, 이 부분은 분명히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17세기까지도 과학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아이작 뉴턴이 작성한 ‘프린키피아(PRINCIPIA)’라는 책의 뜻도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대에서 보는 시점에서는 분명히 과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이 자연 철학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현대에 의미하는 과학이란 엄밀히 판단해보면 굉장히 좁은 범위의 학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 철학의 범위가 현재에 의미하는 과학의 범위보다 훨씬 넓었기에 현재의 과학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한, 현재에는 자연 철학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 않거나 과학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듯 싶지만 고대에 있어서의 자연 철학은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며 현재 과학계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였으면서도, 상당히 흡사한 부분을 띠고 있다는 점이 자연 철학이 추구하는 것이 일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나타내며, 각기 다른 지역에서 다르게 성장하였기에 고대의 자연 철학은 동양과 서양의 특색이라던가 문화, 이념 등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헤겔사전, 가토 히사타케 등, 이신철, 2009. 1.8, 도서출판 b
- 이 시기까지도 가톨릭의 영향이 굉장히 컸기에 과학자들은 천문학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꺼린 편이다.
- ‘자연 철학’에 해당하는 순수과학을 다루고자 하므로 ‘과학 기술’ 분야는 제외토록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은 자연학(Physica)을 모두 배운 다음에 그 모든 것의 존재원리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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